리버 레이즌 전투의 배경
리버 레이즌 전투는 미시간 테리토리에서 벌어진 1812년 전쟁의 중요한 사건이다. 불과 몇 달 전에 디트로이트 요새를 잃은 미국은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여기서 브리지어디어 제너럴 윌리엄 헐이 고개를 떨구며 요새를 넘겨주고, 미국은 디트로이트를 재충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문제는 헐이 전투 없이 쉽게 항복한 이유가 있다. 그는 미국 원주민과 동행한 영국군의 공격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미시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그 이후 이들은 땅을 되찾기 위한 원주민들의 활동을 증대시키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윌리엄 헨리 해리슨이 지휘를 맡아 디트로이트를 탈환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의 주축은 켄터키에서 온 자원병들이었다. 영국군에게는 이들이 '야만적'이라고 불렸지만, 이들이 가진 사냥 실력과 전투에서는 천하무적 같은 기질이 오히려 강점이었다. 이들은 현지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빅 나이프'로 불리며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한 마디로, 켄터키인들은 결코 평범한 부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윈체스터의 실수
문제는 한 가지였다. 해리슨의 계획은 너무 자주 틀어졌다. 그의 군대는 악천후, 고갈된 보급품, 원주민의 매복 위협 속에서 점점 지치고 있었다. 게다가 소독되지 않은 군사기지는 병마저 퍼뜨렸다. 군대의 사기는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이런 상황에서, 윈체스터 장군은 강화된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전략을 세웠다. 그는 프렌치타운을 탈환하기로 결정했지만, 고작 몇몇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다 결국 매복에 걸리게 된다.
윈체스터는 위험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프렌치타운에서 방어선을 강화하지 않았다. 그는 따뜻한 오두막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군대를 중요하지 않게 여겼고, 그 결과 적군에게 쉽게 노출되었다. 이런 태만함과 방심이 그와 그의 군대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그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끔찍한 끝, 리버 레이즌 학살
전투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로 부상을 당한 미국 병사들이 주된 피해자가 되었다. 프로크터 대령은 급히 철수하면서 부상자들을 남겨두고, 아침에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남아있던 원주민들이 파괴된 마을을 약탈하며 부상자들을 불태워 죽이는 끔찍한 학살 행위를 저질렀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미국 측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리버 레이즌을 기억하라'는 구호 아래 새로운 전쟁 준비를 촉진하게 된다. 프로크터를 놓고 보면, 그의 무책임한 행동은 결국 그가 지휘한 작전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다. 비록 전술적 승리를 얻었을지라도, 그러한 학살이 발생한 것은 명백한 패배였다. 그의 결단력 부족과 병사들의 생명을 경시한 태도가 이러한 비극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