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신격화: 권력과 종교의 경계
로마 제국에서 로마 황제와 그 가족을 신격화하고 숭배하는 관습이 확립되었다, 이 제도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면, 기원전 27년에서 14년까지 지배했던 첫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그 출발점이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공화국이 로마 제국으로 변모하는 시기에 각종 개혁을 단행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황제를 신성시하는 신격화 문화였다. 신격화를 통해 로마 문화와 종교의 확산에 공헌한 황제의 공로를 기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고대 도시들이 신이나 여신이 제공한 법률이나 사회적 규범에 의해 통치된다는 기본 개념에서 비롯되었으며, 황제를 신격화하면서 그들의 통치에 신격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도입한 이러한 신격화 제도는 정치적, 종교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반 대중이 황제 숭배를 통해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는 기회가 주어졌고, 그의 무덤은 성지화되어 참배자들이 그곳을 찾아 얻게 되는 보상과 보호를 기원하게 됐다.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이러한 문화는 후대에도 이어져, 많은 황제들이 사후에 신성시되기에 이르렀다.
실질적인 권력 이행: 아우구스투스와 제정의 확립
아우구스투스는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대부가 되는 위대한 조카 옥타비아누스를 통해 황위 계승 문제를 해결했다. 그의 장례식에서 나타난 혜성 때문에 사람들은 아우구스투스가 신들과 함께 한다고 믿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신격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마크 안토니우스와 제국을 동-서 양 지역으로 나누어 통치했지만, 결국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해상 전투에서 물리친 후 이집트를 제국에 병합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첫 시민', 즉 '프린켑스'로 등극해 이후 황제들이 사용하게 될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고, 그것이 후대 황제들의 공식 칭호가 되었다. 아울러 그는 기존의 로마 종교의 대사제로서 활동하며 파티팩스 최대의 제사장을 세습적인 황제의 기능으로 만들어 나갔다. 이런 단일화된 권력 구조는 그의 통치 하에 중앙집권화되어 나중에 로마가 제국으로 완전히 전환하게 되는 기초를 닦았다.
황제와 기독교: 충돌과 변화의 역사
하지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멸망과 함께 기독교가 점차 부상하게 되고, 기독교인들의 박해가 시작됐다. 네로 황제 때는 기독교인들이 로마 대화재 책임을 지게 되었고, 이는 타키투스의 역사 기록에도 남아있다. 이런 박해는 기독교가 더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후속 황제들의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크리스트교는 정치적 위기나 제국의 불안정한 시기에 더욱 강조되었고, 각종 비극의 원인으로 기독교가 지목되며 박해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합법화하면서 이러한 박해는 종식됐다.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 집회가 허용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기독교와 제국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이제는 기독교가 제국의 새로운 중심 종교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황제가 새로운 신격화된 권위로 제국을 지배하게 되며,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